합의금을 송금하고 합의서에 피해자 서명까지 받아 경찰서에 냈습니다. 그런데 2주 뒤 담당 수사관이 추가 조사 일정을 잡자고 전화합니다. 이 순간 대부분의 가해자가 같은 생각을 합니다. “합의가 안 된 건가? 피해자가 마음을 바꿨나?” 아닙니다. 합의는 그대로 유효합니다. 다만 그 합의가 사건을 끝낼 수 있는 종류의 사고였는지, 아니면 형량을 정할 때 참고되는 종류의 사고였는지가 처음부터 달랐을 뿐입니다.
이 글은 그 두 종류를 가해자 입장에서 가르는 법을 다룹니다. 어느 쪽인지 알면 지금 받은 전화가 ‘합의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예정된 절차’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다음에 할 일도 달라집니다. 경계가 되는 법 조항, 경계에서 자주 생기는 애매한 사례, 그리고 합의서가 단계마다 하는 일을 순서대로 짚겠습니다.
같은 합의서, 다른 결과 — 두 운전자의 이야기
A씨는 주차장에서 후진하다 보행자와 부딪혀 전치 3주 상해를 입혔습니다. 신호도, 횡단보도도, 음주도 없었습니다. B씨는 교차로에서 황색 신호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입했다가 측면 충돌로 상대 운전자에게 같은 전치 3주 상해를 입혔습니다. 두 사람 모두 피해자와 300만 원에 합의했고, 합의서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넣어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A씨의 사건은 그 합의서로 종결 방향으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고 중과실이 없는 상해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원칙적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확인되면 수사기관이 더 진행할 이유가 없는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B씨는 다릅니다. 신호위반이라는 중과실 유형이 붙는 순간 특례의 예외가 적용되고,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는 사건을 끝내는 열쇠가 아니라 형량을 낮추는 재료가 됩니다. 검찰 송치, 기소 여부 판단, 경우에 따라 재판까지 절차가 이어집니다. 합의서의 글자는 같았지만 그 글자가 하는 일이 달랐습니다.
경계를 만드는 법 조항 —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특례와 예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운전자가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업무상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한 사고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합니다. 이것이 ‘특례’입니다. 평범한 접촉사고에서 형사처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같은 법은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를 둡니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경우, 피해자가 중상해에 이른 경우입니다. 이 예외에 걸리면 종합보험이 있어도 형사절차가 진행되고, 합의는 형을 정하는 단계에서 작동합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스스로 확인할 질문은 세 개로 줄어듭니다.
| 질문 | ‘예’라면 | ‘아니오’라면 |
|---|---|---|
| ① 사고 유형이 12대 중과실 중 하나에 걸리는가 | 합의는 형량에 반영되는 쪽 | 다음 질문으로 |
| ② 피해자가 사망했거나 중상해(척수손상·사지마비·중대한 뇌손상 등)에 이르렀는가 | 합의는 형량에 반영되는 쪽 | 다음 질문으로 |
| ③ 피해자가 스스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명확히 적었는가 | 합의가 사건을 끝낼 수 있는 쪽 | 문구를 보완해야 함 |
세 질문 중 ①이나 ②에서 ‘예’가 나오면, 지금 받은 출석 요구는 합의와 무관하게 예정돼 있던 절차입니다. ①②가 모두 ‘아니오’이고 ③이 ‘예’라면, 사건이 계속되는 이유를 수사관에게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의서가 기록에 편철되지 않았거나, 처벌불원 문구가 불명확하다고 판단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①의 경계에서 자주 생기는 애매한 사례
12대 중과실은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제한속도 20km/h 초과, 앞지르기 방법 위반, 철길건널목 통과방법 위반, 횡단보도 보행자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음주·약물, 보도 침범, 승객 추락방지의무 위반,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운전의무 위반, 화물 고정조치 위반입니다. 목록은 분명하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걸리는지 아닌지’가 애매한 경우가 많고, 그 판단에 따라 합의의 효력이 통째로 바뀝니다.
| 상황 | 어디가 애매한가 | 가해자가 확인할 것 |
|---|---|---|
| 황색 신호에 교차로 진입 | 황색 점등 시점에 정지선을 지났는지에 따라 신호위반 여부가 갈림 | 블랙박스의 신호 변경 시각과 정지선 통과 시각 |
| 횡단보도 끝에서 보행자와 접촉 | 보행자가 횡단보도 안에 있었는지, 보행 신호였는지 | CCTV·블랙박스상 보행자 위치, 보행 신호 상태 |
| 제한속도 60km/h 도로에서 78km/h | 20km/h 초과 여부 — 측정 방식과 오차 | 속도 산정 근거(블랙박스 GPS, 사고기록장치, 경찰 분석) |
| 어린이보호구역 안에서 성인 보행자 사고 | 스쿨존 조항은 어린이 피해를 전제 — 성인 피해자면 해당 여부 다툼 | 피해자 연령, 사고 지점이 보호구역 안인지 |
| 중앙선 걸친 채 정차 중 추돌당함 | 침범의 고의·과실과 사고와의 인과관계 | 정차 경위, 상대 차량의 진행 상황 |
경계 사례에서는 경찰이 어떤 조항을 적용하려 하는지가 사건의 종류를 정합니다. 조사 과정에서 적용 조항을 반드시 확인하고, 다툴 여지가 있다면 합의서 제출과 별개로 그 부분을 먼저 다퉈야 합니다. 조항이 바뀌면 합의서가 하는 일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②의 경계 — 초진 진단과 중상해 사이
중상해는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신체의 중요한 부분을 잃거나 불구·불치·난치의 질병에 이르는 경우를 말합니다. 사고 직후 전치 4주 진단이었던 피해자가 치료 중 신경 손상이 확인돼 중상해로 바뀌는 일이 있습니다. 그 순간 ②의 답이 ‘아니오’에서 ‘예’로 바뀌고, 이미 제출한 합의서는 종결의 근거에서 양형자료로 성격이 바뀝니다. 큰 부상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단이 확정될 때까지 ②의 답을 열어 두고, 합의서를 냈더라도 재판 가능성을 전제로 준비해야 합니다.
①②에 걸리는 사고 — 합의서는 ‘끝내는 서류’가 아니라 ‘줄이는 서류’
중과실·사망·중상해 사고에서 합의서가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피해가 회복됐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보여 주는 것입니다. 법원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양형기준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은 교통사고 범죄의 주요 감경 사유로 다뤄집니다. 다만 ‘주요한’과 ‘유일한’은 다릅니다. 사고 경위, 과실의 크기, 전과, 사고 뒤의 태도가 함께 저울에 오릅니다.
그래서 이 유형의 가해자가 합의 뒤에 해야 할 일은 ‘끝났다’고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합의서가 실제로 사건 기록에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기소 이후라면 재판부에 다시 제출하는 것입니다. 경찰 단계에서 낸 합의서가 검찰·법원으로 자동으로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계가 바뀔 때마다 ‘지금 이 기록에 합의서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③만 남는 사고 — 문구 한 줄이 절차를 가릅니다
일반 과실 상해사고에서는 합의서의 문구가 결정적입니다. “합의금 300만 원을 받았다”는 문장만 있는 합의서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함께 있는 합의서는 법적으로 다른 서류입니다. 앞의 것은 돈이 오갔다는 영수증에 가깝고, 뒤의 것이 있어야 수사기관이 사건을 종결 방향으로 처리할 근거가 됩니다.
실제로 자주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보험사 직원이나 지인이 만들어 준 양식에 금액과 서명만 적고, 처벌 의사에 관한 문장은 빠진 채 제출하는 경우입니다. 이 합의서는 양형자료로는 쓰이지만 종결의 근거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합의서를 내기 전에 확인할 것은 네 가지입니다.
-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피해자 본인의 의사로 적혀 있는가 (대리인 서명이면 위임 관계가 확인되는가)
- 피해자의 서명 또는 날인과 날짜가 있는가
- 형사합의금이 자동차보험의 민사 손해배상과 별개임을 적었는가 (이 구분이 없으면 보험사가 공제를 주장하는 분쟁이 생길 수 있음)
- 가능하면 합의서와 별도로 처벌불원서를 받았는가
피해자가 의식이 없거나 스스로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③은 처음부터 다르게 봐야 합니다. 누가 어떤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지가 사건마다 달라지므로, 이 경우에는 일반 경상사고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법률 검토를 먼저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단계별로 합의서가 하는 일
같은 합의서라도 어느 단계에서 제출됐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③만 남는 사고를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단계 | 합의서·처벌불원서가 하는 일 | 가해자가 확인할 것 |
|---|---|---|
| 경찰 조사 중 | 요건이 맞으면 송치 없이 종결되는 방향으로 처리될 수 있음 | 담당 수사관에게 접수 여부와 기록 편철 확인 |
| 검찰 송치 후 | 검사 처분 단계에서 공소권 없음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음 | 검찰에 다시 제출했는지, 경찰 기록에만 있는 건 아닌지 |
| 기소 후 재판 중 | 법원이 공소기각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음 | 재판부에 정식으로 제출됐는지, 변론기일 전인지 |
①②에 걸리는 사고라면 위 표의 ‘종결·공소권 없음·공소기각’ 자리에 ‘양형 참작’이 들어간다고 읽으면 됩니다. 어느 단계든 합의서는 의미가 있지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가 다릅니다.
제출한 합의서가 기록에 없는 흔한 이유
③만 남는 사고인데 사건이 계속된다면, 합의서가 기록에 없거나 불완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흔한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찰서 민원실에 접수했지만 담당 수사관에게 전달되지 않은 경우, 보험사를 통해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보험사는 민사 합의서만 받은 경우, 피해자가 직접 내기로 했는데 내지 않은 경우, 송치 뒤 검찰에 다시 제출하지 않아 검찰 기록에 빠진 경우입니다. 확인 방법은 단순합니다. 담당 수사관(또는 검사실)에 전화해 ‘제출한 합의서와 처벌불원서가 기록에 편철돼 있는지’를 묻고, 없다면 사건번호를 적어 다시 제출하십시오.
출석 요구를 받은 날 할 일 — 순서대로
- 먼저 사고 유형을 확정하십시오. 경찰이 어떤 조항을 적용하려 하는지(중과실 여부)를 물어보면 ①의 답이 나옵니다. 경계 사례라면 다툴 자료를 함께 준비합니다.
- 피해자의 진단명과 현재 상태를 다시 확인하십시오. 초진이 치료 중 중상해로 바뀌는 사건이 있습니다. ②의 답이 바뀔 수 있습니다.
- 제출한 합의서를 다시 읽으십시오. 처벌불원 문장이 있는지, 피해자 본인 서명인지, 날짜가 있는지, 민사와의 구분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합의서가 지금 단계의 기록에 들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경찰에 냈다고 검찰 기록에 자동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 ①②에 걸리는 사고라면 합의 이외의 양형자료(사고 뒤 조치, 피해 회복 노력의 경과, 반성의 구체적 내용)를 지금부터 준비하십시오.
합의가 사건을 끝내지 못하는 유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가해자 중에는 “그럼 합의가 소용없었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반대입니다. 그 유형에서는 합의가 없는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과 합의가 있는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의 차이가 가장 큽니다. 합의서는 사건을 끝내지 못하더라도, 선고의 무게를 바꿉니다.
지금 받은 전화가 어느 쪽 신호인지 가렸다면, 다음에 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한쪽이라면 합의서의 문구와 제출 경로를 점검하고, 다른 한쪽이라면 합의서를 들고 재판 준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합의가 실패했다’는 결론만은 성급합니다.
이 글은 유튜브 구독자 38만 명의 '보상과배상TV'를 운영하는 보상과배상 법률사무소가 작성했습니다. 저희는 교통사고 형사사건에서 가해자 방어를 집중적으로 수행하며, 대한변호사협회에 교통사고 전문분야로 정식 등록된 장슬기 변호사(제2019-1310호)와 전경근 변호사(제2023-1100호)가 직접 진행합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의 결과는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상으로 보기
같은 내용을 변호사가 직접 설명한 영상입니다.
- #합의후출석요구
- #합의효력사고유형
- #처벌불원문구누락
- #반의사불벌교통사고
- #합의서제출단계
- #가해자합의서점검
- #12대중과실경계사례
이 주제에서 자주 묻는 질문
Q. 합의서를 냈는데 경찰이 다시 출석하라고 합니다. 합의가 무효가 된 건가요?
아닙니다. 합의는 유효합니다. 사고가 12대 중과실·사망·중상해 유형이라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예외에 해당해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절차가 이어지고, 그 경우 합의서는 사건을 끝내는 서류가 아니라 형량에 반영되는 서류로 쓰입니다.
Q. 내 사고가 합의로 끝날 수 있는 종류인지 어떻게 아나요?
세 가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12대 중과실 유형에 걸리는지,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상해에 이르렀는지, 피해자가 스스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명확히 적었는지입니다. 앞의 두 질문 중 하나라도 ‘예’면 합의는 양형에 반영되는 쪽입니다. 경계 사례라면 경찰이 적용하려는 조항을 확인하고 다툴 자료를 준비하십시오.
Q. 황색 신호에 진입한 사고인데 신호위반인지 애매합니다. 합의서는 어떻게 되나요?
신호위반으로 판단되면 합의서는 양형자료가 되고, 아니라고 판단되면 종결의 근거가 됩니다. 블랙박스의 신호 변경 시각과 정지선 통과 시각 등으로 적용 조항을 먼저 다투고, 합의서는 어느 쪽이든 의미가 있으므로 제출해 두십시오.
Q. 합의서에 금액과 서명만 있고 처벌 의사 문장이 없습니다. 문제가 되나요?
일반 과실 상해사고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가 확인돼야 종결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게 처벌불원 문장이 들어간 합의서나 별도 처벌불원서를 다시 받아 제출하고, 형사합의금이 민사 배상과 별개임도 적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경찰에 낸 합의서가 검찰과 법원까지 자동으로 넘어가나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단계가 바뀔 때마다 지금 기록에 합의서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사건번호를 적어 그 단계의 기관에 다시 제출해야 합니다. 민원실 접수, 보험사 경유, 피해자 직접 제출 약속 등에서 누락이 자주 생깁니다.
Q. 초진은 4주였는데 치료 중 중상해로 바뀌었습니다. 이미 낸 합의서는 어떻게 되나요?
합의서 자체는 유효하지만 하는 일이 바뀝니다. 중상해가 되면 특례의 예외에 해당해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합의서는 양형자료가 됩니다. 재판 가능성을 전제로 합의 이외의 양형자료도 함께 준비하십시오.
Q. 중과실 사고라 합의가 사건을 끝내지 못한다면 합의는 의미가 없나요?
오히려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쪽입니다. 사건이 재판까지 가는 유형에서는 합의가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의 선고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집니다. 합의서는 사건을 끝내지 못해도 선고의 무게를 바꿉니다.
Q. 피해자가 의식이 없어 합의서에 서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요?
피해자가 스스로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상황은 일반 경상사고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어떤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지가 사건마다 달라지므로 서류를 만들기 전에 법률 검토를 먼저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더 많은 질문은 자주 묻는 질문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